본문 바로가기

온라인갤러리/세계의명화

[세계의 명화그림] 19세기 고야의 사투르누스 작품

[세계의 명화그림] 19세기 고야의 사투르누스 작품
고야, 고야작품, 그리스신화그림, 명화, 사투르누스, 사투르누스명화, 세계의명화, 프란시스코고야, 명화그림, 명화그림소개, 고야 명화그림, 고야 그림, 타운리뷰
1821-1823, 벽에서 캔버스로 옮겨짐, 146x83cm ,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프란시스코 고야 이 루시엔테스(1746-1828)는 1819년에 마드리드 서쪽에 퀸타 델소르도 라고
불리는 별장을 구입하였다.귀머거리집이라는 이름은 귀가 들리지 않았던 이 집의 전 주인과
사십대 중반에 청력을 상실했던 고야에게 모두 적절하였다.고야는 이 집의 벽면에 심리적으로
음울한 일련의 이미지를 그렸는데, 이것이 바로 고야의 검은 그림들이다. 검은 그림들은
애초에 대중들에게 공개하기 위해 그린 것이 아니라 나중에 벽에서 뜯어 캔버스로 옮긴 것을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한 것이다. 인상적인 이그림은 아들에게 자리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하여
아들을 차례로 잡아 먹었다는 로마의 신 사투르누스를 묘사한 것이다. 사투르누스 신화를
출발점으로 삼았지만, 이 그림은 신의 격노 , 젊은 세대와 나이든 세대 간의 갈당,혹은
모든것을 삼켜버리는 시간으로서의 사투르누스를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칠십대에 생명을
위협하는 병마와 싸우고 있었던 고야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걱정했던 것 같다.
고야는 루벤스가 그린 바로크풍의 '아들을 삼키고 있는 사투르누스'(1636)에서 영감을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한된 색채와 더욱 느슨한 양식으로 그려진 고야의 사투르누스가
모든 면에서 훨씬 어둡다. 크게 뜬 사투르누스의 눈은 광기와 피해망상을 암시하며
사투르누스는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끔찍한 행위를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원래 그림에서는 반쯤 선 남근이 그려져 있었다는 증거도 있다.
고야는 1823년에 보르도로 이주했다. 에스파냐로 잠깐 돌아 온후 다시 프랑스로 갔고
1828년에 세상을 떠났다.



아트샵꽁기 OPEN 12.25
www.kkong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