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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명화] 19세기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

[세계의 명화] 19세기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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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경 , 캔버스에 유채물감 , 98.5 x 75cm , 독일 , 함부르크 미술관

자연의 숭고한 힘은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 (1774-1840) 그림의 중요한 주제였다. 조국 독일의 자연풍경은 프리드리히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그의 그림에 보이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공포간의 불길한 긴장감은 개인적인 이력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그는 어렸을때 꽁꽁 언 발트 해에서 형과 스케이트를 타다가 얼음이 깨지면서 물에 빠진 그를 구하려다 형을 잃은 사건을 경험하였다. 이 일로인해 그는 어른이 되어 우울증에 시달렸고 드레스덴에서 자살을 기도 하기도 하였다. 자살시도 후 목에 난 상처를 가리기 위해 늘 턱수염을 기르고 다녔다. 프리드리히의 말은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와 영감의 관계를 분명하게 해준다
"화가는 자기 앞에 있는 것 뿐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본 것도 그려야한다.
내면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다면 앞에 있는 것도 그리지 말아야한다"
위 그림에서 고독하고 우아한 인물 앞에서 두려움을 불러 일으키는 바다가 맹렬하게 요동치고 있다. 프리드리히가 결혼하던해 제작된 매우 인상적인 이 작품은 젊은 아내를 위해 동요하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려고 했던 그의 개인적인 투쟁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30세 이후에야 유화에 손대기 시작했지만 감정적으로 비틀린 이미지를 그리기 위해 사용한 어두운 색채의 깊이에서 그가 유화 매체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돌프 히틀러가 나치 선전도구로 이용하려고 프리드리히의 그림 하나를 선택한 사건은 그의 작품에 오명을 씌우긴 했지만 프리드리히의 풍경화에 배어있는 신비주의적이고 멜랑콜릭한 아름다움은 영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