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rait of Camille Roulin 1888. 12
Oil on canvas, 40.5 x 32.5cm
Van Gogh Museum, Amsterdam
항상 고흐의 작품을 만나곤 하지만 작품마다의 사연이나 그 당시 고흐의 삶에
대해서는 궁금해 했던 기억이 없는 것 같다..
별이 빛나는 밤에, 밤의 카페테라스, 해바라기 등..많은 유명그림이 있지만 책을
읽던 내게 호기심을 자극했던 작품은 까미유 룰랭의 초상이다.
고흐의 화풍이나 색감은 그대로인데..단지 궁금했던 것은..이 소년은 누구이고
왜 그려졌을까? 여느 고흐의 작품처럼 밝지도 않고..쉽게 말해 칙칙하다 느껴질
정도의 색감..나처럼 궁금해 할 몇몇 지식인분들을 위해 여기저기 궁금증을 엮어본다..
*1888년 12월 초, 반 고흐는 테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한 일가족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내가 전에 그렸던 우체부의 가족이다.(우체부 룰랭의 초상) 그 남자를 비롯해서
그의 아내, 아기, 어린 남자아이와 16살된 아들까지 일가족 모두를 그렸는데, 그들은
러시아인들처럼 보여도 사실은 매우 프랑스적이다. 캔버스15호, 내 작품들 기준에서 이
초상화들이 나에게 어떤 기분을 들게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반 고흐가 언급한
캔버스의 크기(약 65cm x 54cm)로 미루어 보아 이 11살의 소년 까미유 룰랭의 초상은
편지에 언급된 초상화는 아니다. 이 초상화는 크기가 더 작으며 반 고흐가 룰랭가 사람들을
다시 모델로 쓸 결심을 한 것으로 보아 편지를 쓴 이후에 그린 초상임에 분명하다.
한 일가족의 초상을 완성한다는 야심을 가졌던 반 고흐는 17세기 네덜란드의 대가 할스와
아드리안 반 오스타드의 발자취를 의식적으로 따랐는데, 차이점은 반 고흐는 단체초상보다는
개별 인물의 초상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조셉 룰랭은 아를르에서 반 고흐의 좋은 친구였다. 그는 1888년 7월 말 이미 반 고흐의 모델이
되었으며, 12월에는 가족 전체가 반 고흐의 화실로 향했다. 그때 고갱도 룰랭의 아내 오귀스틴과
4달 된 아기 마르셀을 그렸다.
반 고흐는 다양한 가족 구성원을 모델로 총 17점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오귀스틴 룰랭이 모델이
된 다섯가지 버젼 <아이 보는 여인>은 포함되지 않은 수이다. 반 고흐는 까미유 룰랭의 초상을
두가지 버전으로 그렸는데 하나는 룰랭가를 위한 그림이었고, 다른 하나는 테오와 자신이
소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테오에게 보낸 <까미유 룰랭>에서는 배경과 얼굴에 사용된 노란 색조를 비롯하여 얼굴을 채우는
빛의 표현이라든지 모자와 코트가 특히 눈에 띈다. 이 노란 색조에 대한 가장 논리적인 설명은
반 고흐가 초상화를 저녁에 그렸으며 이 색이 화실에 설치한 가스등이 비춘 결과라는 것이다....
-불멸의 화가 반고흐 中-
※ 테오는 반고흐의 동생으로, 떨어져 생활했기 때문에..고흐의 외로움?고독과 함께 동생
테오에게 자신의 삶을 그림에 담아 보냈다고 한다. 대부분의 명작은 동생 테오를 위해 그린
작품에서 나왔으며, 고흐는 단지 그림이 좋아서 혹은 돈을 벌려고 했다기 보다는 자신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을 캔버스에 담았던 것 뿐이다.
외로운 삶을 살았던 고흐가 태양과 해바라기를 동경했던 이유는 밝은 삶을 원했기 때문은 아닐까...
출처 : [기타] 불멸의 화가 반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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